삶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의 그 경계까지 생생하게 표현된 공연이었다.영화 한 편 길이에 달하는 이 초대형 교향곡이 모두 끝나고, 곳곳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80분 동안 인생의 모든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객석의 열렬한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임헌정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상을 넘어, 체험의 순간을 제공했다.첼로와 베이스의 트레몰로로 불길한 분위기를 예고하면서 1악장이 시작됐다. 이내 죽음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모티브들이 선명하게 들리며 교향곡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만큼 순간순간의 표현이 명확했다.임헌정 지휘자의 노련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임 지휘자는 부천필하모닉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며 ‘말러 붐’을 일으킨 지휘자다. 말러의 언어는 임 지휘자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었다.작품 내내 여러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는 연출도 자연스러운 건 당연했다. 잉글리시 호른이 전원풍의 노래를 연주할 때나, 아니면 첼로와 베이스가 순간적으로 오프닝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암시할 때조차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다.2악장의 춤곡에서도 독특한 렌틀러 리듬보다도, 섬세하게 작품의 다이내믹을 조절하며 자연스럽게 작품의 분위기를 바꾸는 지휘자의 연출이 먼저 보였다. 말러는 2악장을 ‘영웅의 일생을 한순간 비추었던 햇빛’이라고 표현했는데, 눈앞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그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춤곡을 기초로 하며 어두운 분위기와 밝은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또 3악장에선 작품의 주제가 가진 리듬을 강조해 역동적인 에너
2023.05.2520여 년 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마에스트로가 있다. 4년(1999~2003년)에 걸친 집요한 도전,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 단원들을 하나로 묶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말러는 어렵다’는 인식을 바꿔 놓은 지휘자. 임헌정(70)이다.그에게는 ‘뚝심 있는 거장’이란 수식어가 으레 따라붙는다. 1988년 정단원 다섯 명이던 ‘동네 악단’ 부천필을 맡아 25년 뒤 한국 최고 교향악단의 하나로 키워내서다. 베토벤 교향곡, 브람스 교향곡,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등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파고드는 시리즈로 수많은 명연주를 남겼다.그런 그가 자기 대표 레퍼토리인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들고 청중과 만난다.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경아르떼 더클래식 2023’ 다섯 번째 공연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 및 협연자(소프라노 황수미·메조소프라노 이아경)들과 호흡을 맞춘다. 그가 한경아르떼필의 지휘봉을 잡는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지난 11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난 임 지휘자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악보에서 눈을 뗐다.“이번 공연에 제 나름의 목표를 세웠어요. ‘새로운 말러의 세계를 펼쳐내겠다’는 거죠. 나이가 들면서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리 모티브 하나, 리듬 처리 하나, 음색 표현 하나까지, 예전엔 몰랐던 게 보여요. ‘최고의 것은 음표 안에 없다’고 말러가 왜 말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교향곡 2번은
2023.05.1420여 년 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마에스트로가 있다. 4년(1999~2003년)에 걸친 집요한 도전,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강력한 리더십, 쉽사리 꺾이지 않는 끈기로 '말러는 어렵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은 지휘자 임헌정(70·사진)이다.그에게는 ‘뚝심 있는 거장’이란 수식어가 으레 따라붙는다. 1988년 정단원 다섯 명이었던 부천필을 맡아 25년을 이끌면서 한국 최고 교향악단 중 하나로 키워내서다. 베토벤 교향곡, 슈만·브람스 교향곡,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등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파고드는 고집으로 수많은 명연을 남겼다.그런 그가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인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들고 청중과 만난다. 5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경아르떼 더클래식 2023’ 다섯 번째 공연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소프라노 황수미·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협연)과 호흡을 맞춘다. 그가 한경아르떼필의 지휘봉을 잡는 건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지난 11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난 임헌정은 한결같았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악보에서 눈을 뗐다.“이번 공연에 제 나름의 목표를 세웠어요. '새로운 말러의 세계를 펼쳐내겠다'는 거죠. 나이가 들다 보니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리 모티브 하나, 리듬 처리 하나, 음색 표현 하나까지, 예전엔 몰랐던 게 보여요. 말러가 왜 ‘최고의 것은 음표 안에 없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말러 교향곡 2
2023.05.12"바흐는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다."모차르트는 바흐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바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S. Bach)가 아니다. 흔히 아는 그 바흐의 둘째 아들 '칼 필립 임마누엘 바흐(C.P.E. Bach)'를 말한 것이다.오늘날 C.P.E. 바흐(1714~1788)의 명성은 아버지 바흐(J.S. Bach)에 훨씬 못 미치지만, 당대에는 오히려 아버지보다도 명성을 얻었다. 바로크-고전주의 시대의 과도기에 활동한 그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악상으로 모차르트, 하이든, 멘델스존 등 후대 음악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우리에게 다소 생소했던 C.P.E. 바흐의 교향곡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모테트, 하이든의 교향곡까지. 바로크·초기 고전 시대 작품이 한 무대에 펼쳐지는 공연이 마련됐다. 오는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경 아르떼 더클래식 2023' 네 번째 공연에서다.이들 작곡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의 바로 위 선배 작곡가들이다. 고전주의 음악을 꽃피웠으며 이후 낭만주의 시대로 나아가는 길목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세계 3대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무대의 포디움에 섰던 권민석(38)이 지휘봉을 잡는다. 그는 2020~2021년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와 테오 루벤디의 ‘나이팅게일’을 지휘하며 RCO와 데뷔 무대를 가졌다.이전에는 헤이그 필하모닉, 네덜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2020년 헤이그 왕립 음악원의 영재음악원 학생들로 구성된 '아테네움 체임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약했다.한경
2023.04.17‘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적 무곡’은 라흐마니노프가 보여준 음악예술의 시작과 끝으로 통한다. 하나는 작곡가 활동을 접은 그에게 재기의 성공을 가져다줬다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작곡 활동을 거의 중단한 만년에 남긴 대작이란 점에서 그렇다.한경아르떼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두 곡을 콕 집었다. 지휘봉은 작년 9월 베토벤 ‘운명’ 교향곡으로 손발을 맞춘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에게 맡겼다. 첫 곡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함께 어루만질 피아니스트로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로 큰 화제를 모은 손민수가 나섰다.‘피아노 협주곡 2번’은 수준 높은 피아노 테크닉과 감성적인 선율로 승부하는 곡이다. 1악장에서 침묵하는 관현악을 뒤로한 채 종소리 같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다는 사실부터 어떤 서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손민수가 이 곡에 접근하는 시각이 그랬다. 손민수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를 한 방향으로만 들었던 그동안의 습관을 반성하게 했고, 외면받은 라흐마니노프의 또 다른 모습을 찾게 해줬다.1악장에서는 한 음, 한 음 선명하게 울리는 터치와 ‘레가토’(둘 이상의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가 적절히 구분돼 조화를 이뤘다. 팝송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2악장은 담담하면서도 내재된 에너지를 잘 이끌어냈다. 3악장에선 관현악이 제 목소리를 냈지만, 피아노가 이를 도도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존재감을 키웠다.후반부에 연주한 ‘교향적 무곡’은 음향의 밀도와 무게감이 남다
2023.03.05